배려

일상잡설 2007. 7. 25. 15:36

사내 메일로 날라온 '배려' 라는 제목의 좋은 글이다.
꼭 경영자 등의 장급이 아니라도 조직의 특정 상위 그룹 위치나 선점 위치에 있다면 '배려'라는 키워드를
담아두도록 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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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경영자인 회장이 있다. 그는 곱게 자랐고 한 번도 고생해 본 적이 없다. 최고의 학벌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다. 성품이 부드러워 한 번도 화 낸 적이 없는 것을 가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전형적인 사람이다. 배려란 단어는 그 분 머리 속에 없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열 시에 갑자기 임원들을 소집했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지만 너무 사장들이 바쁘니까 할 수 없이 그 시간에라도 모이자는 것이다. 비서실장을 통해 연락을 받은 사장단은 불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모이는 것이냐, 모일 거면 아침 시간에 모이지 왜 잘 시간에 모으느냐, 꼭 가야만 되느냐, 나중에 전화로 얘기를 해 주면 안 되느냐… 하지만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오너의 말을 거스르기는 찝찝해 고객과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 등 중요한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회사로 집합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자는 시간에 집합 당한 사장들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미리 온 사장들은 삼삼오오 모여 회장의 행태를 조심스럽게 비난했고 무슨 이유 때문에 모이는지에 대해 예측을 했다. 약속 시간이 지났지만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연락을 준 것도 아니다. 아니 자신의 명으로 사장단을 모아 놓고 아무 연락이 없다니… 답답해진 비서가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30분이 넘어가자 성질이 난 몇몇 사장들은 회의장을 나갔다. 충성스런 사장들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결국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사과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이런 행태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사장과의 약속 시간을 거의 지킨 적이 없다.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지만 모든 사장들은 그 분 앞에서 모욕감을 느낀다. 지금 그 회사는 굉장한 위기이다.


한국에서 가장 관복이 많은 분인 오명 씨가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는 출근 길에 상사의 차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상사보다 빨리 출근하기 위해 그 차를 추월했지요. 그런데 바로 뒤따라 올 줄 알았던 상사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한참이 지난 후 나타난 상사에게 저는 왜 지금 나타나느냐고 질문을 했지요. 그랬더니 이런 답변을 하시더군요. ‘만일 내가 일찍 출근하게 되면 내 비서는 더 일찍 올 것이고, 다른 직원들도 내 눈치를 보느라 다들 출근시간이 빨라질 것 아닙니까, 저는 그 때문에 빙빙 돌다가 지금 온 겁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저는 그 뒤로 일찍 출근하는 버릇을 없앴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사장이 많다. 또 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찍 출근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생각해 일부러 천천히 출근하는 상사 역시 대단하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깊은 사람이다. 직급이 올라가고 파워가 세질수록 배려의 중요성은 증대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으로 이 세상은 차고 넘친다. 특히 아무 고생 없이 자라고 늘 대접만 받아온 사람에게 배려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경우가 많다.


위 사례에 나온 회장이 대표 선수이다. 이런 사람들 메모리에는 남이란 단어는 없다. 늘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빛내기 위한 조역일 뿐이다. 얘기를 해도 늘 자신에 관한 얘기만을 해야 한다. 용비어천가를 끊임없이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스폿라이트를 받거나 주제에서 자기가 빠지면 섭섭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것은 일종의 질병이다. 이를 아스퍼거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기 세계 속에만 갖혀 산다. 하지만 자폐와는 다르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은 알지만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파워가 센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쉽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분한테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는가? 속으로 우리 보스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다르다. 가정은 직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질병을 가진 사람은 배우자와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자녀하고도 그렇다. 늘 자기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데 가정에서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과 한 평생을 사는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런 사람이 위에 있는 조직은 비극이다. 조직이 냉소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고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


배려란 우선은 나를 위해, 상대방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다산 정약용은 견여탄(肩輿歎)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지,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한다 (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 가마 메는 괴로움을 아는 것, 이것이 배려이고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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